영국 런던살이, 햄스테드 히스 Hampstead Heath는 나의 대표적인 가던 곳이다. 답답하면 바람 쐬러 가고, 친구가 오면 친구를 데리고 갔다. 커피가 먹고 싶으면 커피를 먹으러 갔다. 공원을 한 바퀴 쭉 돌고, 켄우드 하우스에 들어가서 눈호강 좀 하다가, 공원 안 카페에 가서 라테 한 잔에 스콘. 빡빡한 런던 생활에서 유일한 소확행이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보물, 햄스테드 히스
게을러터져서 친구들이 런던에 오면 그녀들을 따라 영국 구경을 했다. 빅벤이며, 해리포터 스튜디오며, 테이트 미술관이며 런던의 잘 나가는 여행지는 사실 친구 따라 꾸역꾸역 나서서 그나마 마스터했다. 하지만 햄스테드 히스만은 다르다. 햄스테드 히스는 런던에서 유일하게 내가 끌고 가는 여행지였다. 날이 좋으면 좋아서, 흐리면 흐려서 좋은 곳. 친구들을 데려가서 보여주고 싶은 나의 보물이었다. 사실, 런던에 너무 볼 게 많아서 바쁜 일정이라면 객관적으로는 빼놓아도 된다. 하지만 막상 들르면 누구라도 좋아할 곳이 햄스테드 히스다.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을, 딱 그런 곳이다. 런던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이 없다. 하지만 햄스테드 히스를 생각하면 뭔가 지릿지릿하면서 내 선택이 잘못되었나 생각하곤 한다. 정말 그립나 보다.
지하철이냐 버스냐, 결국은 선택의 문제
나는 주로 핀스버리 파크 Finsbury Park 근방에 살았는데 햄스테드 히스로 바로 가는 210번 버스가 있어서 항상 버스를 탔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햄스테드 히스 역 Hampstead Heath Staition에 내려서 동네를 둘러보며 좀 걸어도 좋다. 햄스테드 인근은 매우 살기 좋은 곳, 이른바 '좋은 동네'다. 한 번은 이 동네를 지나다 크고 아름다운 장미를 키우는 영국식 정원에 반해 이사를 알아본 적은 있는데, 좀 비싸긴 했지만 꼭 살고 싶었다. 물론 막판에 분수도 모르고 네고를 시도했다가 대차게 까였다.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그랬는지. 허허허 나오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동네다.
210번 버스는 햄스테드 히스 파크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앞에 내려주었다. Stormont Road에서 내리라고 하지만 나는 Compton Avenue Kenwood House 정류장에 내렸을 때 더 가까운 느낌이어서 항상 그렇게 했다. 햄스테드를 따라 이어진 길에서 정류장 하나 차이기 때문에 어디서 내려도 비슷비슷하다. 길가에 햄스테드 쪽으로 난 문이 있으면 그냥 쏙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조금만 걸으면 바로 켄우드 하우스라 도보 20분 이상 걸리는 지하철보다 훨씬 편하게 진입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걸어오면 재밌긴 하지만 공원에 도착했을 때 지쳐서 많이 못 돌아볼 수도 있다. 반대로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항상 공원 깊숙이 가지 못하고 켄우드 하우스를 구경하고 나와서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고 돌아왔던 것 같다. 지하철이나 버스 모두 장단이 있어 결국 선택의 문제다. 넓고 아담하고의 차이는 잘 모르지만 내게 햄스테드 히스는 매우 넓은 공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공원을 다 돌아보긴 했을까.
켄우드 하우스 KENWOOD HOUSE
산책만으로 햄스테드 히스 파크를 여행 일정에 넣기에는 사실 애매하다. 3존이라 시내에서 거리가 있는 편이고 그만큼 차비도 비싸니 뭔가 더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럴 때 일정을 꽉 채워주는 요소가 바로 켄우드 하우스다. 켄우드 하우스는 공원 북쪽에 있어서 210번 버스를 타고 쪽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만날 수 있다. 17세기에 지어져 18-19세기까지 Earls of Mansfield, Earl이라면 백작이니 맨스필드 백작 가문의 저택으로 사용되다가, 1925년에 그 유명한 기네스 맥주 가문의 수장이자 당시 아일랜드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히던 에드워드 기네스가 인수했고 2년 후에 국가에 기부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규모가 크지 않아도 렘브란트, 베르메스, 프란스 할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저택의 구조와 가구들을 그대로 살려 전시하고 있어 그 옛날 맨스필드 백작의 집에 초대받아 소장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1층 다이닝 룸에서 렘브란트의 노년기 자화상과 베르메스의 기타 연주자를 감상할 수 있는 식이다. 차갑고 어색한 현대적인 갤러리나 너무 거대해서 소화 안 되는 미술관에 가기를 꺼려하는 편이고, 그런 곳에서 렘브란트나 베르메스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인파를 헤치고 카메라를 헤쳐야 한다. 하지만 켄우드 하우스만은 눈치 보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들여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어 행복했다. 미술 작품뿐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소품과 건축 그 자체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팬데믹 전이라 항상 예약 없이 워크인으로 입장했는데 무료였고, 온라인으로 찾아보니 지금도 무료인 듯. 멀리서 굳이 찾는 길이라면 혹시 모르니 온라인 예약을 하는 것도 좋겠다.
커피 한잔, 스콘하나 The Brew House Cafe & Garden
켄우드 하우스의 The Brew House Cafe & Garden은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들의 방, 세탁실, 와인셀러, 맥주 저장고가 있던 서비스 윙 Service Wing의 일부분을 사용하는 카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데 햄스테드 히스 한 바퀴 돌고 켄우드 바로 옆에 있는 카페 The Brew house에서 커피 한잔 빼먹지 않는 내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어도 10파운드의 소확행은 절대 빠트리지 않는 것이 룰이었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카페와 빵 종류를 맛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다. 주말은 자리 경쟁이 심하니 절대 피하고, 주중에 가면 여유롭게 쉴 수 있다. 강추.
초원 위의 노란 집, Dairy and Ice Room
켄우드 하우스에서 서쪽 방향으로 틀어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Dairy and Ice Room이라는 흥미로운 공간도 만날 수 있다. 싱아색 페인트로 칠해진 소박한 단층 건물 세 개가 모여 있는데 티룸, 크림과 버터 등 유제품을 만드는 시설과 담당하던 하인의 방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와인 보관, 조각 등에 사용하던 얼음을 보관하는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갈 때마다 닫혀 있어서 항상 창문 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보곤 했다. 버터를 집에서 만들어 먹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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