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체력의 한계를 이기는 게 아니라 한계에 다다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기록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준비해야 한다. 나의 첫 카미노 순례길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해 즐거웠지만 또 힘들었다. '다음에 내가 이걸 들고 오면 사람이 아니야', '내가 왜 그걸 준비해오지 않았을까' 후회를 반복하며 긴 길을 걸었다. 내가 다시 만약 카미노를 떠난다면 난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버릴까? 다시 카미노를 떠난다면 꼭 챙겨야 할 물질과 마음의 준비물을 꼽아보자.
카미노 순례길에서 배낭은 소소익선
유튜버 미니멀 유목민의 에피소드 중 에코백 하나로 카미노 순례길을 걸은 경험을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무거운 배낭의 고통을 겪은 나는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머 미쳤나 봐"가 아니라 복대 하나에 팬티 한 장만 넣어갈 수는 없을까 심각한 연구를 했었다. 그의 말은 절대 옳다. 순례길 배낭은 작아야 한다가 아니라 없어야 한다. 고가 브랜드 배낭의 착용감이고 뭐고 길 위의 짐은 가벼운 게 최고다. 40일 내내 같은 가방을 메다 보면 착용감 평가는 사치다. 어차피 어깨는 배기게 돼 있고, 앞으로 메어 보고, 뒤로도 메어보고 머리에 얹어도 보고 한 손에 들어보고 온갖 궁리도 다 소용없다. 배낭이건 복대건 가장 가벼운 가방에, 최소한만 챙겨야 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오지가 아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알베르게에 가면 물도 있고, 불도 있고, 침대도 있고, 드라이기도 있다. 보통 마을마다 가게도 있다.
카미노 길은 등반이 아니라 길고 힘든 산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다시 간다면 잘 마르는 소재의 옷 한 벌을 입고 접을 수 있는 경량 모자, 선글라스, 팬티 2장, 고기능성 여벌 양말 한 켤레, 초경량 잠옷, 충전기와 핸드폰, 돈만 가져갈 것 같다. 긴 시간 동안 고민해 본 결과 그거면 충분하다. 알베르게에 가면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물품들이 많은데, 야심 차게 들고 온 물건을 버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또, 사람 사는 곳이라 찾고자 하면 못 구하는 물건은 없다. 옷이 젖으면 밤에 빨아 말리고 안 마르면 말려 가며 걸으면 된다. 카미노는 버리고 가는 길이지 버리러 가는 길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다섯 가지만 꼽아서 떠나자.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물건은 없다.
아이러니, 카미노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하는 긴 여정,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돈이다. 카미노 순례를 떠날 때 여비가 충분하지 않다면 가방은 무거워진다. 출발 전에는 예상 밖의 현지 지출을 피하기 위해 이것저것 담고, 현지에서는 밥값을 아끼기 위해 식재료며 간식을 이것저것 담는다. 어느새 배낭은 무거워지고 체력이 상하면 병원이나 호텔에서 더 큰 지출을 하거나, 최악은 여정을 끝내지 못하고 중도 포기할 수 있다. 형편 내에서 여유 있게 예산을 잡자. (특히 식비!!!!)
처음 까미노를 접한 건 2005년 프랑스 렌트 여행 중, 카미노 데 프란세스를 완주한 동행자가 카미노 루트를 지나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다. 당시만 해도 순례길 레스토랑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 포도주, 디저트 등이 포함된 순례자 메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내가 순례길에 올랐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알베르게는 여전히 저렴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7-10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물론 디저트와 고기가 포함된 훌륭한 순례자 메뉴 기준이다) 바가지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대로 먹으려면 순례길에서도 길 밖의 세상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수준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키친에서 다른 순례객들과 요리해서 먹거나 간단하게 때우면 싸게 끼니를 치를 수는 있었다. 나는 내돈내산 유학생으로 함께 떠난 두 친구들에 비해 월등하게 가난했고, 식사의 질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소심해서 머릿속은 끓임 없는 돈 걱정이었지만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하고 점심에는 꼭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마무리해야 하는 친구들의 식사에 맞추곤 했다. 그땐 단체 생활 참 힘드네 했었지만 돌아보면 억지로라도 잘 먹어 무탈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또, 돈을 아끼느라 지역의 산해진미를 지나쳤다면 좋은 기억 한 조각을 잃지 않았을까. 매일매일 긴 길을 걷다 보면 체력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열 가지는 더 되는데 식사마저도 부실했다면 순례길이 아닌 고문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먹는 길고 푸짐한 점심 한 끼, 중간중간 에스프레소와 식후 땡은 지금도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3. 산티아고로 향하는 자, 네 발바닥을 귀히 여기라
순례길을 걸으며 발바닥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발바닥 관리야말로 순례길 체력 관리의 핵심이다. 나는 평발에 족저근막염까지 있어서 평생 하이힐 한번 못 신을 정도로 비루한 발바닥이라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가난한 유학생이라 미처 양말과 신발에 투자하지 못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보이기도 해서 순례길 떠나기 전 한국에서 공수한 밀짚모자를 들고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기 바빴다. 하지만 막상 걸어보니 발바닥의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아디다스에서 두꺼운 스포츠 양말 몇 켤레로 아주 완벽하다고 자만했었는데 그것은 경기도 오산. 카미노를 떠난다면 꼭 물집 방지 초 기능성 양말을 찾아 신어야 한다. 안 그래도 비루한 발바닥으로 물집에 통증에 고생하는 나를 보던 친구는 자신의 고기능성 양말 한 켤레를 나누어 줬고 그제야 나는 부활할 수 있었다. 신발은 당연히 중요하다. 나의 패착은 사이즈였다. 이전에 선물 받은 등산화가 있었는데 너무 딱 맞았는데 나는 등산화를 새로 구입하지 않았고 발에 익숙하다는 핑계를 들고 끌고 간 것이 문제였다. 얼마나 불편했던지 순례길 막바지에는 등산화는 갖다 버리고 슬리퍼를 신고 다녔을 정도. 지금 다시 카미노를 떠난다면 나는 꼭 넉넉한 사이즈의 익숙한 등산화와 초 기능성 양말 두 켤레를 준비해 갈 테다. 특히 양말은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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